MP3로 클래식 음악 듣기, Metadata Lock-in
요즘 클래식 음악을 조금씩 다시 듣고 있다. 물론 MP3로.  나는 귀가 얘민하지 않은 편이고 또 조용한 곳에서 고급 오디오로 듣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비트 레이트가 128Kbps만 넘어가도 그다지 음질에는 신경쓰이지 않는다. 디지털 카메라가 사진 찍는 것을 활성화시켰듯이, MP3로 인해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던 이들이 다시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MP3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우리 회사에서 관여하는 음악 서비스를 이용해서 PC와 MP3 플레이어로 들으려고 했다. 클래식에 관한한 우리나라 서비스 중에서는 그래도 개중 나은 편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그래도 많이 불편했다. UI등 분위기도 클래식 음악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특정 DRM과 특정 서비스에 lock-in되는 것이 싫었다. 비록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관여하는 서비스이긴 하지만.

그 다음으론 기존에 가지고 있던 CD를 rip하기 시작했다.  이걸 좀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EAC가 정평이 나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냥 iTunes로 했다.  iTunes의 MP3 인코더가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런 쪽에 전문적으로 관심있는 분들은 hydrogenaudio를 보라), 192Kbps 정도면 어차피 내 귀로는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품질은 되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Gracenote DB (예전의 CDDB)를 이용해서 ID3 태그를 자동으로 채워주고, 수천곡 이상의 음악을 쉽게 관리하고 검색할 수 있으며 podcast도 편하게 쓸 수 있어서 그냥 iTunes를 쓰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CD외에 새로운 곡들도 접해보고 싶었다.  CD 매장은 이제 별로 남아있지도 않고 이용하기도 불편해서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었는데, 차에서나 다른 여러 디바이스에서 듣기 위해서는 DRM이 적용되지 않아야만 했다.  그래도 음악 서비스에 관여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불법 MP3를 쓰긴 싫었고 또 원하는 곡을 찾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므로 유료 서비스를 찾아보았는데, AllOfMP3는 가격이 싸고 (세상에 음악을 MB당으로 파는 곳이 있다니...) 곡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완전히 합법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러시아 내에서만 현행법상 합법이라 함).  결국 얼마전부터 이용하기 시작한 서비스는 eMusic.  DRM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주요한 음반사들과는 계약을 못하고 인디 음악 위주로 서비스하고 있지만 클래식 쪽에서는 Naxos의 전곡을 갖고 있어 그런대로 음원이 꽤 있는 편이다. iTunes Music Shop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곡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iTunes에 모으기 시작한 곡이 수백곡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는 관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가장 UI가 낫다는 iTunes (및 iPod)의 경우에도 클래식을 듣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더 잘 정리되어 있는 글들(Tagging Classical Music, Classical Music on the iPod and iTunes, Secrets: Corral your classical music 등) 을 참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부분의 곡의 ID3 태그를 손으로 수정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iTunes에서는 일정 곡들만 선택한 후 특정 태그만을 한꺼번에 업데이트하는 것이 쉽기 때문에 그나마 고생을 덜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DRM이 없는 MP3를 이용하면서 음원에 대한 vendor lock-in은 피할 수 있었지만, iTunes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종류의 lock-in은 피할 수 없었다.  잘 정리된 태그와 앨범 체계, 플레이리스트 등의 metadata 때문에 다른 툴로 전환하여 음악을 이용하는 것이 시간이 지날 수록 어려워진다.  Metadata lock-in이라고나 해야 할까.  며칠 전에 맥의 iTunes 라이브러리를 PC iTunes로 옮기면서도 시행착오와 고생을 했지만, 다른 툴로는 옮길 엄두가 안난다. 결국 DRM과 관계없이 iTunes에 lock-in된 것이다.  그래서 조만간 iPod를 구입하고, 차에도 iPod를 잘 지원하는 카오디오를 설치하여 음악을 들을 생각이니, Fairplay를 피했음에도 (사실은 이용하려 해도 쉽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음악에 관한한 애플에 lock-in되어 버렸다.

사실 이와 같은 metadata lock-in은 DRM과 같은 컨텐트 자체에 의한 lock-in이나 윈도우즈와 같은 플랫폼 API의 lock-in에 비해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lock-in되기 때문에 거부감이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구속력이 있다.  만약 자기가 찍은 사진을 한 10년쯤 Picasa에서 태그를 이용해 정리해왔다면 이를 어찌 다른 툴로 바꿀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글루스와 같은 블로그 서비스에서 비록 저작권이 글쓴이에게 있다고는 해도, 또 다른 서비스나 설치형 블로그로 글들을 옮겨주는 툴이 있다고 해도 permalink URL 때문에 쉽게 다른 서비스로 옮겨가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metadata lock-in이라고 해야 할까. 이것이야말로 Web 2.0 시대에 사용자를 효과적으로 붙잡아 놓을 수 있는 방안인 것 같지만 이러나 저러나 특정 서비스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사용자 입장에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듯 하다.
by alphageek | 2006/06/06 11:22 | 기타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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